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로 바로가기 카피라이트 바로가기

전문가 칼럼

공지사항 뷰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입니다.(박명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4
조회 61433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충남대 간호대학 교수 박명화

 

흔히 생명의 은인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마 인생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필자는 인생에서 이 말을 들은 소중한 경험을 한 바 있다. 바로 치매환자의 가족으로부터이다. 4년 전 치매가족 지지프로그램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서울에서 열려 치매가족지지프로그램이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떻게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가 끝나자 곱게 단장을 한 노부인이 다가와 나의 손을 잡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라고 하였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라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당황스러워 하던 나에게 본인은 치매환자의 가족이며 수년전부터 치매가족 지지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당시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극단적 생각까지 하였지만 치매가족 지지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하루 하루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2년 전 미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치매환자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참관하게 되어 나는 한국에서 왔고 미국에서 치매환자 가족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지 배우기 위해 왔다고 소개하였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중년의 여인이 다가와 자신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저에게는 Life Saver입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다른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중요한 정보를 얻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의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기 바랍니다.”라고 진심어린 당부를 하였다.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만 가족의 경험은 같았다.

2009년 한국치매협회 우종인회장님의 권유로 치매가족지지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그램의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자의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그 뒤로 매뉴얼을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제공할 담당자를 교육할 때도 학문적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확산한다는 마음이 컸을지 모른다. 하지만 치매환자 가족분의 진심어린 감사의 말 한마디는 가족프로그램의 효과를 통계적 수치에서 찾으려던 나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었으며 프로그램의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다. 

치매환자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가족들에게 프로그램을 전달하느라 수고하고 있는 전국의 광역치매센터와 치매안심센터, 그리고 그 외 여러 기관의 담당자분들에게 당신은 누군가의 생명의 은인, life saver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가족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곧 치매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다. 두 사람의 삶을 구했으니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치매환자를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가족분들도 혼자서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말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 은인을 어서 빨리 찾아가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전글 다음글
이전글 성년 후견제도(박건우)
다음글 치매 어르신의 행동 문제들, 치료가 가능할까요?(성수정)

목록